2025. 5. 6. 18:40ㆍ카테고리 없음
■ 1939년 ‘이사가는 체스 올림피아드’ – 체스사의 전환점이 된 대회
1939년 8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제8회 체스 올림피아드가 화려하게 개막했습니다. 세계 각국의 체스 기사들이 모여 실력을 겨루는 이 대회는 당시로선 국제적 스포츠 이벤트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대회가 한창 진행 중이던 9월 1일, 예기치 못한 뉴스가 전 세계를 강타했습니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입니다. 대회장은 한순간에 축제의 장에서 불안과 긴장감으로 바뀌었고, 선수들과 관계자들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 갑작스러운 전쟁, 그리고 남아버린 선수들
유럽 각국에서 온 선수들은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유럽은 빠르게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었고, 귀국길조차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폴란드,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계 유대인 선수들은 전쟁과 정치적 이유로 귀국이 불가능하거나 위험했습니다. 결국 많은 선수들은 “돌아가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리고 아르헨티나에 남아 **새로운 삶의 터전을 구축**했습니다.
이로 인해 체스 올림피아드는 역사상 유일하게 ‘이사가는 대회’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고, 전 세계 체스사의 방향성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아르헨티나 체스의 부흥
아르헨티나는 당시 남미에서 가장 발전한 국가 중 하나였고, 문화적으로 유럽과 가까운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유럽 출신 체스 선수들이 정착함으로써 아르헨티나 체스의 수준은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전 유럽 챔피언인 미겔 나이도프(Miguel Najdorf), 파리에서 활동하던 유대인 기사 헤르만 필닉(Hermann Pilnik)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들은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체스 선수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남미 체스 발전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나이도프는 이후 아르헨티나에서 세계적인 체스 대회를 여러 차례 개최하고, 체스 이론 발전에 기여하는 등 ‘아르헨티나 체스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 체스 역사에 남은 사건
1939년 체스 올림피아드는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었습니다. 한 대회가 전쟁과 맞물리면서 **선수들의 인생 경로**, **한 나라의 체스 수준**, 그리고 **세계 체스판의 지형도**까지 바꾸어버린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만약 전쟁이 아니었다면 이 선수들은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 경력을 이어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에서의 정착은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었고, 체스는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며 또 다른 꽃을 피웠습니다.
● 마무리하며
‘이사가는 체스 올림피아드’는 전쟁과 스포츠, 개인의 선택이 맞물리면서 만들어진 역사적 사건입니다. 체스 한 게임, 한 대회가 단순한 승패를 넘어 삶과 문화, 역사를 움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야기죠.
1939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그 대회는, 체스 팬들에게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를 남기며 오늘날까지도 회자되고 있습니다.